미쉐린 3스타 라연: 전통과 정통, 최고의 팀워크로 이뤄낸 쾌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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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라호텔 라연 김성일 셰프의 조리 인생은 우연한 계기로 시작되었다. 군 복무 중 상사의 지시에 따라 얼떨결에 취사병 생활을 1년 동안 했던 것이 시작이라면 시작이었다. 군 제대 후 조리와는 무관한 직장 생활을 2년가량했고, 그 무렵 고모님이 계신 호주로의 이민을 결심하게 되었다. 기술 자격증을 갖고 있으면 그나마 수월하게 이민 비자를 취득할 수 있다는 정보를 얻었고, 그 길로 조리사 자격증에 도전했다. 학원에 등록하여 조리 기술을 배웠고, 자격증을 취득했던 당시 그의 나이는 결코 적지 않은 26세였다.

하지만 그해, 호주 이민을 위해 만반의 준비를 기하고 있었던 그에게 뜻밖의 시련이 닥쳤다. 어머니께서 병으로 쓰러지셨던 것이다. 그때부터 가족들의 만류가 시작되었다. 편찮으신 어머니를 두고 이민을 떠나는 것은 자식, 특히 장남으로서의 도리가 아니라며 모든 이들이 말렸다. 한동안 고민도 했고 방황도 했지만, 결국 가족의 곁에 남기로 결심했다.

때는 1988년. 서울의 호텔 업계는 다가오는 88 서울 올림픽 개최를 앞두고 식음, 객실, 조리 등 다양한 분야에서 인력을 대거 뽑기 시작했다. 당시 네 군데 호텔에 입사 지원을 했던 김성일 셰프는 네 곳 모두로부터 서류 합격 통보를 받았는데, 모든 인터뷰가 한 날 한 시에 잡히는 바람에 한 곳을 선택해야 했다. 그래서 선택하게 된 신라호텔. 그가 입사한지도 28년의 세월이 지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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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년에 문을 닫은 한식당 ‘서라벌’이 전신인 라연은 신라호텔 이부진 사장의 한식에 대한 남다른 애착과 열정에 힘입어 2013년 8월에 오픈했다. 이 사장은 한국의 품격 있는 식문화를 세계에 알리는 것을 목표로 ‘품질과 서비스’를 앞세워 ‘전통과 정통’을 기반으로 한 창의적인 한식 조리법을 꾸준히 연구. 개발하는데 아낌없는 지원을 해왔다. 그 예로 7명 안팎으로 구성된 식재료 TF  팀은 일 년 내내 전국을 돌며 제철, 제산지에서 나는 최고의 식재료를 찾아 주방팀에게 조달한다.

“가거도의 마른 해삼과 가덕도의 대구를 애용합니다. 전복 같은 경우는 청산도에서 공수하는데 향토 요리에서 영감을 얻은 전복 젓국 갈비와 전복 비빔 솥밥 등이 라연의 대표적인 메뉴죠.”

제철, 제산지 식재료를 최우선으로 하는 만큼 라연의 메뉴는 분기별로 한 번씩 바뀐다고 한다.

“우리나라는 사계절이 뚜렷하잖아요. 그때 그때 계절의 변화에 따라 메뉴를 변경하는 것을 원칙으로 하고 있습니다. 스태프들과 대화를 하거나 회의를 통해서 메뉴를 결정하는데 라연의 요리는 정통 한식에 가깝기 때문에 옛날부터 내려오는 고 조리서를 보면서 아이디어나 영감을 얻죠. 그걸 토대로 하되 시대에 맞게 표현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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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리 경력 28년. 그는 여전히 주방에서 음식을 만드는 일이 즐겁다고 한다. 그 비결은 과연 무엇일까?

“저희 주방에는 11명의 스태프가 있습니다.  주방의 팀워크을 도모하기 위해 한 달에 두 번씩 학습회를 진행하는데요. 고 조리서를 공부하기도 하고, 향토 음식, 궁중 음식, 반가 음식 등 다양한 한식을 주제로 발표의 시간을 갖습니다. 제가 하나의 주제를 정해주면 저희 스태프는 그 주제에 대한 연구를 하고 발표를 합니다. 특정 요리의 유래를 소개하기도 하고, 식재료의 활용에 대해 이야기하기도 하고, 요리를 직접 시연하기도 하죠. 주방 스태프들이 가장 긴장하고 압박감을 느끼는 시간이에요. 발표가 끝나면 다 함께 토론도 하고 어떻게 하면 소개된 옛 요리를 현시대에 맞게 보완할 수 있을까 진지하게 고민도 해봅니다. 재료의 계절감이나 전통과 정통이 잘 반영된 요리는 수정 보완 작업을 거쳐 레스토랑 메뉴에 올리기도 하고요.”

분기별로 바뀌는 라연의 대표적인 제철 요리는? 계절별로 추천해달라고 부탁했다.

“봄에는 가덕도산 왕우럭 조개 냉채를 추천합니다. 봄에서 여름으로 넘어가는 계절에는 장어 맛이 훌륭한데 라연에서는 맵지 않은 고추장 소스를 발라 장어를 구워내죠. 몸보신이 필요한 뜨거운 여름철에는 전복 삼계탕이 좋습니다. 마지막으로 대구가 많이 나는 겨울철에는 대구 어죽을 추천합니다. 북어 보푸라기와 시원한 나박김치와 함께 한상 차림으로 나가고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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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을 대표하는 한식 파인 다이닝 레스토랑답게 라연의 와인 리스트 역시 방대하다. 현재 보유하고 있는 와인 종류가 480종 정도. 라연의 책임 지배인 겸 소믈리에인 김학수에 의하면 한식과 와인 페어링은 내국인과 외국인 손님 모두에게 큰 호응을 얻고 있다고 한다.

“한식에는 우리의 전통주를 매칭 하는게 가장 맞죠. 한국 분들 뿐 아니라 세계 각지의 분들이 오시는데 한국의 전통주를 처음 접할 때 조금 놀라실 거예요. 독주가 있는 반면에 부드러운 술도 있고, 막걸리도 있고요. 많은 외국 분들이 ‘쌀로 만든 술을 추천해달라’고 하시는데 그럴 때마다 저는 막걸리 중에서도 가장 고급스러운 이화주를 권해드려요. 라연의 메뉴에도 이화주는 고려 시대의 방식을 복원해서 요구르트처럼 떠먹기도 하고 물을 타서 차게 마시기도 하는 전통주라고 설명되어 있죠.”

한식과 가장 잘 어울리는 술이 전통주이긴 하지만 코스 요리를 먹을 때는 상대적으로 도수가 낮은 와인을 추천한다고 그는 말한다.

“한식은 발효된 간장, 된장, 액젓의 짠맛과 감칠맛, 김치의 신맛 등 존재감이 확실한 다양한 맛들이 어우러져서 하나의 특징에 초점을 둘 수가 없어요. 양식은 보통 소스에 맞춰 와인 페어링을 하는데 한식은 그러기가 힘들어요. 달달한 간장 소스와 기름진 고기의 진한 맛이 특징인 갈비찜이 좋은 예에요. 어느 한 쪽으로 편중되게 와인을 맞추기 힘들죠. 그래서 저는 프렌치 요리와 잘 맞는 무거운 카베르네 소비뇽(Cabernet Sauvignon)보다는 론(Rhône) 지방처럼 뜨거운 프랑스 남부 지역에서 생산되는 지공다스(Gigondas)나 샤또네프 뒤 파프(Châteauneuf-du-Pape)의 쉬라(Shiraz) 종을 추천하는 편이에요. 좋은 빈티지의 샴페인도 한식과 잘 어울려서 만든 분들이 찾으세요. 화이트 와인도 마찬가지인데 샤르도네이(Chardonnay)보다는 소비뇽 블랑(Sauvignon Blanc)이 더 무난합니다. 소비뇽 블랑은 나물 같은 채소 요리와도 잘 어울리고 대구찜이나 대구전 같은 생선 요리와도 잘 어울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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쉬는 날이면 김성일 셰프는 야외로 나가 로드 바이크를 즐긴다.

“사이클을 타면서 강변을 달릴 때의 속도감을 즐깁니다. 계절의 변화를 온몸으로 느끼고 자연의 변화하는 모습으로부터 영감을 받아요.”

미쉐린 가이드 서울에서 별 세 개를 받은 소감을 부탁하자 그는 이렇게 대답했다.

“셰프에게는 최고의 영광이라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저 혼자만의 노력으로 이루어진 게 아니라 함께 한 조리팀, 식음팀, 구매팀, 기획팀, 홍보팀, 마케팅팀 등 최고의 전문가들의 땀과 열정으로 이루어낸 협업의 성과물이라고 생각합니다. 특히 한식 연구와 개발에 많은 관심을 갖고 계신 이부진 사장님의 아낌 없는 지원이 있었기에 가능했던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마지막으로 그는 셰프의 꿈을 꾸고 있는 후배들과 젊은 셰프들에게 한 마디 남겼다.

“한식이던 양식이던 음식 스타일에 연연하지 말고 지금 하고 있는 요리를 자양분으로 삼아 시대에 맞게 표현할 수 있는 노력을 해주었으면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