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멸치, 그 고소한 유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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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rtwork by @president_of_fish

찬란한 봄의 한가운데 신록의 눈부신 나날이 계속되고 있는 4월 하순. 바야흐로 미식가들의 발걸음은 부산 기장군 대변항으로 향하고 있다. 매년 이즈음 최고의 맛을 자랑하는 멸치를 맛보기 위해서다.

‘하고많은 봄 음식 가운데 하필이면 멸치라고?’라고 생각했다면 큰 오산이다. 멸치라고 다 같은 멸치가 아니기 때문이다.

난류성 어종인 멸치는 겨울에 비교적 따뜻한 외해에 머물다가 3월 중순에서 5월 중순 사이 산란을 위해 연안으로 몰려온다. 이 무렵 기장과 남해안 연안에서 잡히는 멸치는 그 크기가 무려 10-15㎝에 달하는 ‘대멸’로 체내에 지방질을 많이 함유하고 있어서 육질이 부드럽고 고소하다. 봄멸치를 최고로 쳐주는 이유다.

매년 이맘때가 되면 기장 고깃배들은 멸치 떼를 따라다니면서 그물을 수직으로 내려 조류에 흘려보내는 ‘유자망(流刺網)’으로 멸치를 잡는다. 유자망으로 잡은 대멸은 거친 조류를 따라 이동하는 관계로 운동량이 많아 회로 먹으면 식감이 좋다. 부산 지역이 유자망 방식을 이용한다면 남해 미조항 지역에서는 조수간만의 차를 이용해 물고기를 가두는 ‘죽방렴(竹防廉)’ 방식으로 멸치를 잡는다. 이 방식으로 잡은 멸치는 그물에서 털지 않고 뜰채로 떠내면 되기 때문에 상처 없는 온전한 형태를 유지할 수 있다는 장점을 갖고 있다.

오후 두 시, 멸치잡이 배가 만선 깃발을 휘날리며 대변항으로 입항하면 바구니를 든 동네 아낙들이 모여들고, 어선 옆에 일렬로 늘어선 어부들은 그물 끝을 잡아채며 멸치 털기를 시작한다. “어라이데야~ 어라이데야~” 흥겨운 어부가에 맞춰 선원들이 그물을 튕길 때마다 그물코에 촘촘히 박힌 은빛 멸치들은 춤을 추듯 공중으로 튀어 오른다. 예로부터 업신여김을 당했던 멸치가 가장 빛나는 순간이다. 한동안의 역동적인 작업이 끝나면 선원들의 얼굴은 온통 비늘 범벅이 되고 그물에는 멸치가 수북이 쌓인다. 싱싱한 멸치는 경매를 통해 횟감으로 팔리지만 대개는 젓갈을 담거나 큰 솥에 넣어 찐 다음 건조장에서 말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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멸치잡이가 한창인 대변항

멸치는 예로부터 우리 조상들이 애용한 생선이었다. 정약전의 자산어보(玆山魚譜)에는 ‘밝은 빛을 좋아해 어부들이 밤에 불을 밝혀 유인하여 그물로 떠서 잡는다. 국이나 젓갈을 만들어 먹거나 말려서 먹는다’고 적혀 있다.  시원한 국물에서 곰삭은 멸치 젓갈까지 한국인의 밥상에서 빠지지 않는 멸치는 다양한 음식에 감칠맛을 더해주는 명품 조연이다.

숨이 막 끊어진 대멸은 비늘을 털고, 머리와 지느러미를 떼고, 내장을 꺼내고, 뼈를 발라내어 회로 먹거나 무쳐 먹는다. 초추장과 막걸리 식초에 버무린 멸치 회 무침은 아삭하고 향긋한 미나리와 찰떡궁합이다. 기장 사람들은 멸치 회를 생미역에 싸먹기도 한다. 짭짤한 기장 미역의 식감과 고소한 멸치의 맛이 잘 어우러져 바다 내음을 제대로 느낄 수 있다.

생멸치찌개도 맛있다. 흔히 멸치를 국물 내는 데 쓰는 정도로 알고 있지만, 멸치도 훌륭한 찌개거리가 될 수 있다. 무, 다시마, 멸치를 넣고 미리 만들어 놓은 육수에 된장을 풀고 시래기를 깐 다음 한소끔 끓여낸다. 이후 생멸치를 얹고 고춧가루를 듬뿍 뿌려 칼칼하게 끓여낸다. 구수한 시래기는 뜨거운 밥에 얹어 먹어도 맛있고, 보들보들한 멸치와 함께 쌈에 싸먹어도 훌륭하다.

뭍에서는 상상도 할 수 없는 멸치 구이도 별미다. 통통한 멸치에 굵은소금을 뿌린 뒤 석쇠에 올려 자글자글 구워내는 멸치구이는 가을 전어구이만큼이나 고소한 맛을 뽐낸다. 이 외에 생멸치전, 생멸치조림, 멸치의 치어로 만든 생세멸시래기국, 생멸치를 쌀가루 푼 물에 걸쭉하게 끓여 부추와 마늘로 마무리한 생멸치메즙찜 등도 경남 지방에서 즐겨 먹는 향토음식이다.

봄과 여름의 사이, 눈과 입이 즐거운 기장으로 가보자. 멸치 굽는 냄새가 진동하는 대변항 포구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