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식객’ 허영만 화백: “내 생애 마지막 식사는 평양냉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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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화가 허영만 화백. 식도락가이자 음식 전문가, 와인 애호가, 클래식 음악 마니아, 산꾼, 그리고 뱃사람. 허영만 화백이 그의 인생에서 가장 사랑하는 것들을 잘 설명해주는 단어들이다. 한 사람을 묘사하는데 필요한 수식어가 이보다 더 다양할 수 있을까?

215. 이것은 오직 만화 그리기에만 몰두한 지난 40년간 그의 손에 거쳐 탄생한 작품수다. <각시탈>, <오! 한강>, <타짜>, <꼴>, <날아라 슈퍼보드>, <제7구단>, <비트>, <식객> 등 대부분이 제목만 들어도 바로 고개가 끄덕여지는 대작들이다. 친근한 캐릭터는 오래도록 가슴에 남고, 허영만 화백 특유의 집요함과 따뜻함이 묻어나는 스토리는 인간미가 넘칠 뿐만 아니라 거기에 세월을 뛰어넘는 무언가를 함께 지니고 있다. 그의 작품들이 오랜 세월 동안 꾸준히 사랑받아온 것도 바로 그런 이유에서가 아닐까.

‘한국 음식’이라는 방대한 소재를 27권의 책과 7년에 걸친 연재를 통해 풀어낸 <식객>이란 작품은 허영만 화백이 그려낸 최고의 명작이자 한국 식도락가들의 바이블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꼼꼼한 취재와 방대한 자료를 바탕으로 팔도강산의 숨겨진 지역 특산물과 향토 음식을 발굴하여 그에 얽힌 문화와 역사, 삶의 희비애환까지 맛깔스러운 이야기로 풀어낸 <식객>. 이 작품은 단순한 요리 만화라기 보다는 우리 밥상의 맛을 지키고자 하는 의지가 담겨 있는 한국 음식 문화 인문학에 더욱 가깝다. 단순한 정보 전달에 그치지 않고 마음으로 느끼는 음식,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는 음식의 중요성을 일깨워주는 진한 감동을 주는 이야기들로 독자들의 마음을 사로잡아온 <식객>은 그래서 더욱 그 의미가 깊은 작품이다.

그러고 보면 허영만 화백을 따라다니는 그 수많은 수식어가 놀랍지는 않다. 그는 사람과 세상에 대한 호기심으로 똘똘 뭉쳐있는 작가이기 때문이다. 백두대간 비박 종주부터 뉴질랜드 캐러밴 여행, 캐나다 로키 산맥 여행, 요트 해안선 일주, 자전거 식객 전국 일주, 자전거 해안선 일주, 그리고 2017년 지금,  ‘허영만과 패거리’들과의 호주로의 집단 가출까지. 만화와 함께 하는 또 다른 여정을 앞둔 허영만 화백을 만나 식객, 음식, 그리고 여행에 대한 맛있는 이야기를 나눠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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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객>이 탄생한지도 15년이 지났어요. 당시에 한식이라는 방대한 소재로 만화 시리즈를 만들어야겠다고 마음을 먹은 계기가 있었나요?

만화를 지속적으로 그리려면 소재가 풍부해야 돼요. 그렇기 때문에 종류가 무궁무진한 음식이야말로 훌륭한 소재가 될 수 있지. 원래는 김치 하나만 다루려고 했었어요. 그래서 김치에 대해 조사해 보니까 130가지 정도가 되더라고. 그런데 생각해보니 김치는 결국 메인 요리가 아닌 반찬일 뿐이야. 그래서 이것 하나만으로는 안될 것 같아서 한식을 두루 다루기로 했어요. 술까지 말이야.

자신이 좋아하는 소재로 오랜 시간 동안 많은 독자들을 끌고 나가는 작업을 하는 작가는 극히 드물어요. 지금도 가끔씩 <식객>을 들춰볼 때가 있는데 그럴 때마다 참 열심히 즐겁게 작업했다는 생각이 들어. 27권에서 연재를 끝내게 됐지만 나는 100권까지 바라보고 있었거든. 끝났을 때 굉장히 아쉬웠지. 연재가 끝나지 않았더라면 지금까지도 이것저것 그리고 있었을 텐데. 하지만 그게 끝났기 때문에 다른 작품들도 할 수 있었다고 생각해요.

소재는 매번 어떻게 선정하셨나요?

연재를 시작하기 전에 스토리를 50개 정도 준비했고 지역별로 두 번씩 취재를 다녔어요. 닥치는 대로 조사를 했는데, 정작 연재를 시작할 때가 되니까 노트로 정리해 두었던 취재 내용이 감이 안 오는 거야. 그래서 결국 다시 한 번 전국을 돌았지.

매번 음식이 우선이었어요. 어떤 음식에 대해 쓸 건지가 정해지면 순서를 정해야 했고. 전라도 음식이 맛있다고 매번 전라도 음식만 다룰 수는 없잖아. 월별, 계절별로 소재를 정리한 뒤에 지역 별로 구분했지.

취재하기 힘들었던 음식이나 식재료도 있었을 것 같아요.

일부 식재료 중에는 채취한 지 3일 만에 먹어야 하는 것도 있었어요. 옻나무 알죠? 옻순은 정말 분초를 다퉈가며 취재를 했어. 옻나무 순이 어느 정도 자라면 그걸 떼어다가 초장에 무쳐 먹는데 너무 자라면 옻의 성분이 강해져서 못 먹게 돼요. 송이버섯도 변수가 많은 소재였지. 가물어도 비가 많이 와도 안 되는 게 송이거든.

한 번은 일식집에서 주방장이랑 이런저런 얘기를 나누다가 고추냉이와 우메보시 이야기가 나왔어. 보통 일본에서 수입하는 그 두 가지 재료를 고집스럽게 한국에서 재배하고 만드는 사람이 있었던 거예요. 그런 건 무조건 취재 대상이지. 사람들을 만나면서 우연히 접하게 된 취재 대상들은  잽싸게 메모해 놓았다가 제철이 되면 골라서 쓰기도 했어요.

<식객> 연재하면서 가장 힘들었던 점은 무엇이었나요?

재미있었던 일이 더 많아. 전국 방방곡곡을 다니면서 사람을 만나야 하는 일이었으니까. 게다가 음식을 취재하러 다녔기 때문에 어딜 가나 음식이 기다리고 있었어요. 사람들을 만나다 보면 어떤 이들은 인터뷰 자체를 태생적으로 싫어해. 그럴 때는 좀 힘들긴 했지만 그게 바로 취재하는 사람의 능력 아니겠어요? 싫어해도 내 쪽으로 끌어들이는 거.

취재를 하면서 참 다양한 사람들을 만났을 것 같은데 특별히 기억에 남는 인물이 있나요?

전봉산에서 만난 나물 캐는 할머니. 고향이 이북인데 여자로서는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깊은 산속에서 나물을 캐는 분이셨어. 취재를 잘 마치고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는데, 할머니가 하는 말이  “전봉산에 나물을 캐러 오면 먹을 만큼만 떼어 가든지 어린 순만 떼어 가든지 해야지 도대체 왜 뿌리까지 캐가냐”는 거야. 사람들이 나물을 데쳐서 냉동실에 꽉꽉 채워 넣고 일 년 내내 먹는 게 싫다고 하더라고. 그 할머니가 아직 살아 계시나 가끔씩 궁금해요. 연세가 많으셨거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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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릴 때부터 음식에 남다른 관심이 있으셨나요?

우리는 8남매야. 아버지, 어머니, 그리고 할머니까지 11식구였는데 나가서 외식을 한다는 건 상상도 못하던 시절이었어요. 참고로 나는 자장면을 중학교 3학년 때 처음 먹어봤어. 학생회장 선거에 나오라길래 나갔더니 자장면을 사주데. 촌놈이 그걸 어떻게 먹는지 몰라서 둘러보니까 비비더라고.

어릴 때 반찬 투정하면 아버지께서 딱 한마디 하셨어. “숟가락 내려놔.” 그러니 먹을 거에 관심이 있을 수가 있나. 뭘 먹어본 게 있어야 먹고 싶은 것도 있는 건데.  <식객>의 내용 중 기자들이 자주 인용하는 문장이 있어요. “이 세상엔 어머니의 숫자만큼의 다양한 맛이 있다.” 어릴 때는 어머니가 해주는 게 내가 아는 음식의 전부였어.

태어나서 엄마 젖 먹고 엄마가 만들어 준 이유식 먹고 엄마 음식 먹으면서 자라잖아. 엄마 음식이 평생 함께 가는 거예요. 중간에 아무리 좋은 음식이 나타나도 기본은 엄마 음식이야. 붕어 낚시하는 사람들이 이것저것 해보다가 결국 붕어 낚시로 돌아가듯이 말이야. 그래서 어머니는 위대한 거예요. 가끔씩 마누라가 나한테 “애 낳아봤어?” 한다고. 그러면 딱 할 말이 없어져 (웃음).

어머니가 해주시던 음식 중에 가장 맛있었던 음식은 무엇이었나요?

옛날에는 핸드폰이 없었잖아. 고향집에 간다고 연락할 방법이 편지 밖에 없었어. 우리 집에는 원래 전화도 없었거든. ‘일주일 후에 여수 갑니다’라고 편지를 보내고 당일에 7시간 기차 타고 내려가면 어머니가 제일 먼저 해놓는 게 고들빼기김치였어. 그 고들빼기는 요즘처럼 비닐하우스에서 키운 게 아니라 노지에서 채취한 건데 그게 참 썼어. 내가 쓴 걸 좋아하는데 요새 고들빼기는 쓴맛이 없더라고. 그 쓴맛을 빼려고 소금물에 몇 시간 담가 놓았다가 내가 도착해서 밥 먹는 시간까지 딱 알맞게 무쳐 내셨어요. 그게 너무 맛있었어.

어머니의 고들빼기김치가 그리워서 한 번은 고들빼기를 다섯 다발 사서 아내한테 줬지. 만들어 달라고. 밤새 손질해서 김치를 만들면 처음 몇 번은 어머니 김치 맛이 나다가 조금 지나면 그 맛이 안 나더라고. 음식점에서 주는 고들빼기김치는 왜 그렇게 시뻘건지 모르겠어. 아무래도 내가 직접 담가야겠어. 내가 먹는 건데 내가 담가야지.

어머니의 고들빼기김치 맛의 비결은 무엇이었을까요?

지금 생각해보면 젓갈이었던 것 같아요. 멸치 젓갈. 우리 집에서는 새우젓을 안 썼거든. 다른 젓갈을 써서 그 맛이 안 났나? 요즘은 식당들이 각지 사람들을 상대하다 보니까 여러 사람 입맛에 맞추느라 간이 약해졌어. 그게 바로 음식이 원래 갖고 있던 맛을 죽이는 원인이야. 예전에는 여수 음식을 먹으면 젓갈 맛이 굉장히 강했거든. 지방 음식들이 서울로 올라오면 두세 달 안에 서울 음식과 똑같아져. 난 그게 불만이야. 좀 개성 있는 식당들이 있었으면 좋겠어요.

예전에는 흔했었지만 지금은 귀하거나 찾아보기 힘든 음식이 있는지요?

나는 해초를 좋아해요. 질피(잘피)라고 얇은 쪽파처럼 생긴 해초가 있는데, 어릴 때는 묶음으로 사서 흰 부분만 떼어 날로 먹었어. 달착지근하면서 짠맛도 났었는데 그게 맛있었어. 얼마 전 섬 여행을 하다 보니까 방파제 근처에 떠다니더라고.

선생님에게 음식은 어떤 의미를 지니고 있나요?

나는 음식 대충 먹는 거는 용서할 수 없어요. 값비싼 음식을 이야기하는 게 아니야. 누군가가 정성껏 만든 음식을 한 젓가락 한 젓가락 먹으면서 ‘아, 이건 이런 맛이구나’ 혹은 ‘여기 오길 잘 했다’라는 생각은 하면서 먹었으면 좋겠어요. 라면으로 한 끼 대충 때운다던지, 되지도 않은 이상한 음식을 먹고 나면 다음 식사 때까지의 네댓 시간이 굉장히 불편해. 그런 음식은 유독 입에 오래 남아 있다고. 제대로 먹자는 거지. 인스턴트 라면도 제대로 먹는 방법이 있어요.

음식은 정이고 맥이라고 생각해요. 맥은 통할 수 있는 길이에요. 한국이나 서양이나 비즈니스 할 때 사람들이 만나서 밥을 먹잖아. 사람들은 음식을 먹으면서 술을 마시면서 본심을 드러내거든. 그러면서 비즈니스도 성사시키고, 친구들끼리의 관계도 돈독해지고.

엄마의 음식 맛이 평생 간다고 하셨는데, 사람 입맛은 변하기도 하잖아요. 예전에는 즐기지 않았었는데 지금은 즐겨 드시는 음식이 있으세요?

맞아요. 입맛이 변하기도 해. 난 여수 출신이라 싱겁고 국물이 있는 서울 김치를 원래 좋아하지 않았어요. 부모님 고향이 어디지?

이북 출신이세요.

이북 김치도 냉면 만들어 먹어야 하기 때문에 국물이 많아. 전라도는 김치 맛이 세거든. 예전에는 서울 김치 보면 ‘이걸 김치라고 먹나’ 싶었지. 나이 들고 위 기능도 떨어지다 보니까 요즘은 센 거보다 싱겁고 국물이 있는 김치가 좋더라고.

내 친구 부모가 이북 분들인데 시원한 김치 국물을 좋아하셨어요. 막 담근 김치는 국물이 많아서 퍼기 쉬운데 한 겨울에 김칫독 바닥에 있는 국물을 퍼 오라고 하면 환장하겠다는 거야. 키도 작은 놈이 납작하게 엎드려서 애썼겠지.

선생님은 생애 마지막 식사로 무엇을 드시고 싶으세요?

나는 원래 함흥냉면만 먹고 평양냉면을 싫어했었어. 그런데 내가 요새 평양냉면에 빠졌어요. 난 예전부터 메밀국수 맛있게 한다는데는 열심히 찾아다녔었는데 우리나라 메밀국수는 물이 흥건히 묻어 있고 별로더라고.

일본 여행을 갔을 때였는데 손님들이 동경에서 헬리콥터를 타고 먹으러 오는 소바집이 있다는 얘기를 우연히 들었어. 돼지고기 요리를 먹으려고 예약까지 했었는데, 예약을 취소하고 그 소바집을 찾아갔지. 좁은 길을 따라 산꼭대기까지 올라갔는데 너무 외진 곳이라 가이드한테 “이 집 소바가 맛없으면 너 혼자 여기 놔두고 가겠다”라고 했어. 그런데 너무 맛있더라고.

어떻게 맛있던가요?

고소하고 향이 좋았어. 너무 맛있어서 “이게 왜 이렇게 맛있냐”라고 물어보니 수확한지 3일 된 메밀로 만들었대. 그때가 10월 말이었거든. 메밀은 원래 가을에 수확할 때 먹는 음식이에요. 10월부터 2월, 조금 더 해서 3월까지. 이 사이에 먹어야 제일 맛있거든. 그런데 메밀의 성질이 차잖아. 그래서 한국 사람들은 겨울에 메밀 먹으면 안 된다고 생각해. 뜨거운 국물도 없이 그것만 먹으니까 메밀국수를 여름에 먹어요. 제일 맛없을 때.

일본에서 메밀 맛을 알아버렸어. 그리고 한국으로 돌아와서 메밀국수를 먹어보니까  우열을 알겠더라고. 그 이후부터는 평양냉면을 즐겨 먹어요. 마지막 식사로 뭘 먹겠냐고 물으면 평양냉면이야. 이렇게 입맛이 변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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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별히 좋아하시는 냉면집이 있나요?

작업실이 수서라 점심때 냉면 먹으러 강북까지 넘어오기가 너무 멀어. 분당 서현동에 좋아하는 집이 하나 있고, 집 근처 운중동에도 괜찮은 집이 하나 있어요. 가장 최근에 좋아하게 된 집은 남한산성 꼭대기에 있는 집인데 그 집 냉면을 먹고 감동받았어. 그 집은 비나 눈이 내리는 날에는 냉면이 반값이야. 메밀 함량이 80%라는데 물냉면이 아주 괜찮아요. 이 집에서는 고춧가루 서너 개 붙어 있는 허연 깍두기가 나오는데 완전 이북식 김치야. 먹으면 슴슴하고 무맛 밖에 안 나. “이거 다 좋은데 김치가 좀 그렇네” 하니까 나랑 같이 갔던 선배가 “김치도 냉면의 맛과 어울리게 일부러 이렇게 만든 거다”라고 하더라고. 그다음에는 혼자 갔었는데 주인한테 물어보니까 진짜 그렇다고 합디다. 김치까지 신경 쓰는 자세야말로 내공이지 않겠어요? 냉면이라는 음식이 아무 데나 들어가서 먹으면 실패할 가능성이 높은 음식이야.

싫어하시는 음식은 무엇인지 궁금해요.

식은 음식만 잔뜩 내오는 한정식. 그리고 이것도 저것도 아닌 퓨전 음식도 싫어요. 먹고 나면 양식을 먹었는지 한식을 먹었는지 모르겠어.

그리고 난 단 음식을 신경질적으로 싫어해요. 요즘 음식은 설탕과 조미료 범벅이야. 재료 본연의 맛을 제대로 살리지 못하니까 단맛으로 덮어버려요. 쓴맛은 쓴맛, 신맛은 신맛, 그리고 살짝 싱거운 맛은 싱거운 대로 혀가 느끼면서 종합적인 평가를 내려야 하는데 조미료랑 설탕을 쳐버리면 그걸로 모든 맛이 끝이야.

나는 집에서 자주 음식을 하는 편인데 가급적 양념을 쓰지 않아요. 조미료 자체가 집에 없어. 소금이나 장 정도의 기본양념만 사용해요.

난 손님들에게 “좀 짜게 할까요? 싱겁게 할까요?” 정도는 물어봐줘야 하는 시대가 왔다고 봐. 획일적으로 양념 범벅해서 내는 거는 성의가 없다고 생각해.

  어느 때보다 더 제철 식재료와 정직한 음식을 찾는 소비자들이 많아졌어요.

먹고살 만해지니까 그렇게 된 거지. 우리가 언제부터 지금같이 고기 구워 먹었나? 고기는 생일날 미역국에 조금 들어있던 귀한 식재료였어요. 누가 죽으면 돼지 한 마리 잡아서 나눠 먹었고. 내가 젊었을 때 고향집에 어른들 뵈러 갈 때 선물이 뭐였는지 알아? 정육점에서 신문지로 싼 쇠고기 조금이 선물이었어. 그리고 설탕 한 포대였지.

요리를 자주 하시는 걸로 알고 있는데 요리는 어떤 계기로 시작하셨어요?

작업실에서 가까운 식당가까지 가서 점심 먹고 돌아오는데 한 시간 반 정도 걸려. 문하생들이 멀리 가서 밥 먹기 싫어하더라고. 그래서 아줌마를 썼더니 음식이 늘 똑같아. 호박 전, 계란말이, 그리고 밑반찬. 우리가 먹고 싶은 걸로 우리끼리 해 먹자고 했지. 그런데 애들이 처음엔 음식을 못하더라고. 그래서 애들 먹이려고 밥하기 시작했지.

가장 최근에 만드신 음식은?

오늘 점심에는 자반고등어 조려 먹었어요. 그런데 간장을 많이 부어서 좀 짜게 됐어.

자반고등어조림은 어떻게 만드세요?

냄비에 무를 깔아. 고등어랑 무를 같이 조리하면 고등어는 익고 무가 설익거든. 무가 타지 않게 물도 좀 붓고 간장도 좀 붓고. 무가 조금 익으면 고등어 토막 쳐서 얹고 양파 썬 거랑 간장, 마늘, 파, 참기름으로 만든 양념장을 생선 위에 얹어. 그런 다음에 물이 너무 졸지 않나 확인해야 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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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미있는 여행을 계획하고 계시다고 들었어요.

집단가출 시리즈로 호주 여행가요. 사람 안 다니는 데로.

그런 장거리 로드트립을 할 때는  드세요?

주로 현지 음식 먹어요. 호주 같은 경우는 장시간 차를 타고 다녀야 하니까 한식도 조금 준비를 했지.

일본 여행을 많이 하셨다고 들었어요. 일본에서 가장 맛있게 드셨던 음식은 뭐예요?

아귀 있지? 아귀가 이렇게 커. 살이 흐물흐물해갖고 도마 위에 올릴 수도 없어요. 밀리고 미끄러져서 도마 위에서 손질하기가 힘들어. 일본에서는 아귀를 삼발이에다 걸고 칼로 배를 쭉 찢어서 내장 제거하더라고. 그걸 회와 탕으로 먹고 마지막으로 탕 국물에 밥이랑 계란 하나 탁 깨뜨려 넣어서 죽을 끓여주는데 너무 맛있더라고.

고기를 좋아하세요 해산물을 좋아하세요?

해산물. 고기는 기름기 없는 고기를 좋아해요. 난 사람들이 왜 비싼 돈 주고 마블링 잔뜩 된 고기를  먹는지 모르겠어. 캐나다 한 달 여행할 때였는데, 눈이 오는 3월의 어느 날이었어. 캠핑 사이트에 가면 지붕으로 덮인 취사 공간이 있는데 그날은 추워서 우리밖에 없었어. 슈퍼에서 한 덩어리에 7천 원 하는 제일 싼 쇠고기를 사다가 소금만 뿌려서 장작불에 구워 먹었는데 어찌나 맛있던지! ‘그래, 이거야’ 했지. 그런데 한국에 돌아와서 먹으니까 그 맛이 안 나. 물론 분위기도 다르고 고기도 달라서였겠지만.

2017년 미쉐린 가이드 서울 편이 출간되었어요. 선생님께서는 주로 어디서 맛집 정보를 얻으세요?

요새는 레스토랑 가이드니 블로그니 너무 많아. 블로거들이 인터넷에 이것저것 많이 추천하더라고. 그런데 그 정보를 믿을 수가 없어. 얼마 전에 보니까 어떤 네이버 블로거가 지금이 꼬막 철이라며 꼬막 삶는 법을 가르쳐주겠대. 물이 끓기 시작하면 한쪽 방향으로만 젓고 꼬막이 입을 열기 시작하면 꺼내라고 하더라고. 그거 엉터리거든. 꼬막은 끓여서도 안 되고 한쪽으로만 젓는 것도 아니야. 깨끗하게 씻은 꼬막을 냄비에 넣고 그 위에 팔팔 끓는 물을 부어야 돼. 그리고 나서 뚜껑 덮어. 5분 후에 꼬막을 건져 껍질을 까면 살의 한쪽 면이 봉긋하게 솟아올라 있고 반짝반짝해. 익힘 정도는 고기에 비유하자면 레어 정도 될 거야. 조금 더 익은 게 좋으면 6분에서 7분 후에 건지면 돼. 꼬막은 입이 벌어지면 단물이 다 빠져나가서 맛이 없어요. 입이 열리면 안 돼.

내 생각에는 그래도 미쉐린 가이드 같은 공신력 있는 단체에서 레스토랑을 추천해주면 어느 정도 안심할 수가 있다고 봐요. 아무 집이나 소개해주지는 않으니까 보통 이상의 맛은 느낄 수 있다는 거지.

사실 어딜 가나 맛있는 현지 음식을 먹고 싶으면 택시 기사에게 물어보면 돼. 나 역시 그렇게 해서 여러 번 성공했어요. 그다음에는 경찰 서장 같은 기관장들. 그 사람들이 다니는 데가 맛있어. 정보를 좀 캐야 하지만 거의 정확해.

최근에 드신 음식 중에 가장 맛있었던 음식은 무엇인가요?

얼마 전에 일본에서 온 부부랑 남해안 일대를 3박 4일간 돌았는데 여수에서 물메기탕을 먹었어요. 부부 중 남자 나이가 75세인데 복어가 먹고 싶대. 마침 메뉴에 복어가 있어서 복어를 시켰지. 친구가 하는 말이 5년 만에 처음으로 복어를 먹는 거래. 그런데 다음에 시킨 물메기탕 맛을 보더니 복어는 안 먹더라고.

2017년에는 어떤 작품을 계획하고 계신지요?

최근에 커피 만화를 연재하다 그만뒀어요. 마감 없는 만화를 그리겠노라고 다짐했었는데 결국 마감은 있어야겠더라고. 지금은 주식 만화를 준비하고 있어요. 스토리 위주의 만화가 아니고 주식 투자가 자문단을 모집해서 어떤 종목이 좋은지, 좋으면 왜 좋은지에 대해 알려주는 거야. 또 어떤 종목은 빠져야 하는데 왜 그래야 하는지. 그런 만화를 준비하고 있어요. 그건 호주 여행 후 7월 초에나 연재되지 않을까 싶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