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랜드 다큐멘터리 매거진…매거진B No.56 미쉐린 가이드 국문판 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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쉰여섯 번째 매거진 <B>입니다.

여행을 계획할 때마다 매번 다짐하는 것이 있습니다. 마음을 비우고 온전한 휴식을 누리다 오자는 것인데요. 늘 이 다짐에 번번이 실패하고 맙니다. 이유는 새롭거나, 특이하거나, 인상적인 무엇이 있으면 그냥 지나칠 수 없는 ‘직업 정신’이 발동하기 때문입니다. 특히 먹을 것에 있어서라면 쉽사리 타협이 이루어지지 않습니다. 여행 기간은 한정되어 있는데 방문해보고 싶은 레스토랑의 리스트는 넘치다보니 산술적으로는 하루에 대여섯 끼를 먹어야 하는 결과가 나오기도 하죠. 비단 저 뿐 아니라, 식도락 여행을 떠나본 이들이라면 누구나 겪게되는 ‘행복한 고통’일 거라 생각합니다. 이렇듯 음식이란 사람의 몸과 마음을 기꺼이 움직이게 만들고, 감각을 증폭시키며, 더 나아가서는 이 경험을 다수의 누군가와 공유하도록 합니다. 좋은 음식, 미식(美食)이란 훌륭하게 조리된 요리의 차원을 넘어, 그것을 즐기는 문화의 총체가 아닐까 생각합니다.

이번에 소개할 브랜드는 미식의 대중화를 이끌었다고 평가받는 <미쉐린 가이드>입니다. 전 세계 유수 레스토랑에 별점을 매기는 레스토랑 평가 안내서인 <미쉐린 가이드>는 놀랍게도 100여 년이 넘는 역사를 지니고 있습니다. 프랑스의 소도시에서 타이어 제조 회사를 운영하던 미쉐린 형제가 1900년 자동차 여행을 활성화하기 위해 만든 정보성 가이드를 시작으로 1933년 본격적으로 별점 평가 시스템을 도입하며 지금까지 철저한 내부 기준에 따른 레스토랑 리뷰를 진행해왔습니다.  <미쉐린 가이드>는 창간 이래 오랜 시간 동안 미식 여행의 ‘바이블’처럼 여겨왔으며, 많은 셰프가 매해 <미쉐린 가이드>의 별점 결과를 마치 대학 합격 발표를 앞둔 수험생처럼 기다립니다. 최고 등급인 3스타를 받은 레스토랑은 미식의 성지처럼 여기기도 하죠. 흥미로운 점은 이처럼 전무후무한 권위를 요식업계와 거리가 먼 타이어 제조 회사가 흔들림 없이 유지해왔다는 사실입니다. 대부분의 레스토랑 평가 매체가 음식 관련 잡지나 협회, 식음료 브랜드와 관계있는 것과 비교해보면 상당히 이례적인 비즈니스라고 할 수 있습니다. 가이드를 제작하기 위해 직접 평가원을 고용하고 이들의 신분을 철저히 숨기는가 하면, 여행 경비는 물론 내로라하는 레스토랑에서의 식사 비용을 직접 지불하고 있습니다. 역설적으로 평론가 개인의 명성이나 자의식 강한 언론의 영역 밖에서 세운 중립성이 미식을 대하는 태도를 순수하게 만든 셈이죠.

<미쉐린 가이드>의 엄정한 평가와 이에 대한 지속적 투자는 미식 문화의 발전에도 많은 기여를 했습니다. 마치 2000년대 초·중반 전성기를 맞은 한국 영화가 평론의 성장과 함께 이루어졌듯이요. 매거진 <B> 역시 현대 미식의 흐름과 발전을 관통하고 있는 매개로서 <미쉐린 가이드>를 주목했습니다. 소비자들은 미쉐린 스타 레스토랑을 방문하며 미각은 물론 음식과 관련한 경험에 열린 태도를 갖게 됐고, 셰프들은 별점의 획득 혹은 유지를 위해 수련을 계속해나갑니다. 이 과정에서 부정적 견해를 밝히는 이들도 있습니다. 요리 개개의 독창성보다는 미쉐린화한 결과물을 선보이는 데 셰프의 에너지를 소진시키며, 그 기준이 프랑스적 사고에 기반한다는 것이죠. 누군가는 이를 두고 미식의 엘리트주의라고 말하기도 합니다. 하지만 <미쉐린 가이드>가 매해 발표하는 리뷰를 통해 미식 지표를 만들 수 있음을 보여준 후, 그 토양에서 식문화와 관련한 다채로운 실험이 꽃핀 것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입니다. 설사 그것이 반작용이라 할지라도요. 최근 2~3년간 런던이나 샌프란시스코, 아시아권에서 발행한 <미쉐린 가이드>에는 이처럼 진화한 미식 세계가 반영되어 있습니다. 북유럽 요리는 물론 페루와 스리랑카, 뉴질랜드 등 변방의 요리를 다루는 레스토랑이나 번듯한 식기 또는 테이블과는 거리가 먼 길거리 음식이 이름을 올리는 식이죠.

이렇게 <미쉐린 가이드> 하나를 두고도 수많은 평가와 논쟁이 일어나는 것을 보면 음식이란 참으로 복합적 문화라는 생각이 듭니다. 재료를 다루는 테크닉인 동시에, 셰프의 재능을 발휘한 예술이며, 레스토랑을 찾은 이를 접대하는 서비스이기도 하니까요. <미쉐린 가이드>와 같은 전통적 리뷰가 건재하고, 동시에 다양한 플랫폼에서 새로운 관점의 평론이 활발히 논의되고 있는 요즘의 세태를 보면 미래의 성장 동력이 식문화에 있지 않을까 하는 추측도 하게 됩니다. 유럽 어딘가의 파인 다이닝 레스토랑이 아니라도, “오직 이것만을 위해 여행을 떠날 만큼 독보적 음식”을 찾아 경험하는 일에 더욱 정진해야겠습니다. 개인의 호사를 넘어 생산적 가치를 위한 투자일지도 모르니까요.

 

편집장 박은성

 

[ 매거진<B> 제공  magazine-b.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