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쉐린 가이드 포핸드 다이닝: 모던 한식과 페라나칸 요리의 진수를 만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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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성이 뚜렷한 두 명의 셰프가 협업하여 완성하는 포핸드 다이닝 (네 개의 손이 만들어 내는 한 끼 식사를 의미함)이 요식업계의 트렌드로 자리 잡고 있다. 다양한 조리법을 결합하여 새로운 맛을 창출해내고, 서로의 다름에서 의외의 공통점을 발견하는 포핸드 다이닝은 1과 1의 합이 2가 아닌 3의 시너지 효과를 내기도 한다.

셰프에게 포핸드 컬래버레이션은 새로운 조리 기술을 접할 수 있는 기회이자 서로의 아이디어와 경험을 공유하면서 요리에 대한 편견을 무너뜨릴 수 있는 기회이다. 반면 음식을 먹는 손님들에게는 좋아하는 두 명의 가수를 같은 무대에서 동시에 만나볼 수 있는 기회 같다고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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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뜻 보면 한국의 임정식과 싱가포르 출신 말콤 리는 미쉐린 스타 셰프라는 점 외에 별다른 공통점이 없는 듯하다. 모던 코리안 파인 다이닝의 선구자로 알려진 임정식은 서울 청담동에 위치한 ‘정식당’과 뉴욕에 있는 ‘정식’으로 각각 미쉐린 원 스타와 투 스타를 받았고, 말콤 리는 수백 년의 역사를 자랑하지만 대외적으로는 잘 알려지지 않았었던 페라나칸 요리로 미쉐린 스타를 받았다. 그가 오너 셰프로 있는 싱가포르의 ‘캔들넛’은 페라나칸 요리로는 최초로 미쉐린 스타를 받은 레스토랑이기도 하다.

하지만 둘은 의외로 닮았다. 자국의 전통 음식을 창의적으로 재해석한 그들의 요리가 가장 큰 공통분모이다. 하지만 너도 나도 전통에 기반을 둔 모던 퀴진을 하는 요즘 그 이유 하나만으로 두 셰프의 ‘다름’을 설명하기에는 역부족이다. 임정식과 말콤리가 접시에 담아내는 음식은 단순히 현대적이지만은 않다. 수백 년 동안 먹어온 전통의 맛이 그들의 요리에 녹아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들의 요리는 가볍지 않다. 새롭고 엣지하면서도 반갑고 익숙한 맛. 그들은 다르기 위한 다름을 추구하지 않는다. 술책을 동원하여 모양새에만 치중하는 “모던” 퀴진과는 차이가 있다. 잘 아는 맛이지만 올드하지 않고, 많이 먹어봤지만 식상하지 않은 음식. 전통을 현대인의 입맛에 맞게 재조명한 그들의 요리가 빛을 발할 수밖에 없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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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들이 한식과 페라나칸 요리를 선택한 이유는 무엇일까? 임정식은 당연하다는 듯이 말한다. “제가 자라면서 먹었던 음식이고, 제가 지금도 매일 먹는 음식이고, 제가 가장 잘 아는 음식이기 때문이죠.” 말콤 리도 마찬가지. “임정식 셰프도 그렇지만 저 역시 제 문화와 제가 먹고 자란 음식에 대한 깊은 애정을 갖고 있어요. 제가 만드는 음식을 통해 젊은 세대에게 페라나칸 음식의 역사와 이야기를 전달해줄 수 있음에 자긍심을 느껴요.”

여기서 잠깐 페라나칸 음식에 대해 알아볼까? 페라나칸은 15세기에서 17세기 사이, 말레이 군도 (페낭, 말라카, 싱가포르, 인도네시아)로 이주한 중국인 남성과 말레이 여성 사이에서 태어난 자손을 이르는 말이다. 이들의 식문화는 자연스레 중국, 말레이, 인도네시아 음식으로부터 영향을 받았고, 그들만의 고유한 형태로 변형되어 지금까지 이어져오고 있다. 페라나칸 요리에 빠지지 않는 재료로는 코코넛 밀크, 가랑갈(생강의 일종), 타마린드, 레몬그라스, 카피르 라임 잎, 그리고 짠맛과 신맛이 강렬한 새우젓의 일종인 칭카록 (cincaluk) 등이 있다. 시고 짜고 맵고 단 요리가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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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7월 21일, 미쉐린 가이드 주최로 이틀에 걸쳐 진행된 정식 x 캔들넛 포핸드 다이닝은 아뮤즈 부슈로 시작됐다. 한국과 페라나칸의 맛을 동시에 즐길 수 있었던 네 종류의 식전 애피타이저는 본격적으로 시작될 식사에 대한 예고편이었다.

김밥처럼 말아낸 정식당의 육회 요리는 튀긴 김의 바삭한 식감, 부드럽고 고소한 한우 육회, 그리고 언뜻언뜻 느껴지는 신 김치의 아삭함이 조화로운 재미있는 애피타이저였다.

이어진 말콤 리의 랍스터 코코넛 커리는 ‘페라나칸’이라는 이름만큼이나 이국적이었다. 코코넛 밀크, 레몬그라스, 강황, 그리고 가랑갈로 맛을 낸 커리는 진하고 크리미했으며, 단맛과 신맛, 매운맛이 번갈아가며 혀를 자극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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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강렬한 맛의 커리 다음에 나올 음식이 과연 빛을 발할 수 있을까 궁금하던 순간 임정식 셰프의 시그너처 요리인 성게밥이 나왔다. 향긋한 김 퓌레와 고소한 참기름을 넣어 비빈 밥에 바삭하게 볶은 메밀, 김치, 그리고 가늘게 썬 아삭한 양상추 몇 가닥 위에 넉넉하게 올린 녹진한 성게의 조화란! 앞에서 먹었던 커리에 전혀 위축되지 않는 맛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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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인 코스는 낮은 온도에서 48시간 동안 익힌 후 뜨거운 숯불 위에서 마무리한 말콤 리의 소갈비 요리. 한국식 갈비 구이와는 확연히 다른 맛의 주범은 바로 고기 위에 올려낸 다양한 고명이었다. 짭짤한 마른 멸치, 그린 망고 삼발 소스, 생강 꽃, 식초에 절인 뿌리채소, 그리고 바삭하게 튀긴 나팔꽃 잎. 기름진 소갈비의 느끼함을 적절히 절충해주었던 이색적인 조합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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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무리는 정식당의 수정과와 캔들넛의 부아 켈루악 아이스크림. 부아 켈루악은 싱가포르, 말레이시아, 인도네시아 등지에서 자라는 유독성 열매로 페라나칸 요리에서는 빠질 수 없는 진귀한 재료이다. 땅에 묻어 열매의 독성을 어느 정도 없앤 후 수시간 동안 끓여야 비로소 요리에 활용할 수 있는 손이 많이 가는 재료다. 진하고 흙내가 나며 쌉싸름하면서도 고소한 맛은 싱글 오리진 다크초콜릿과 흡사하다. 캔들넛 레스토랑의 시그너처 디저트인 부아 켈루악 아이스크림은 솔티드 캐러멜, 초콜릿 크럼블, 고춧가루 위에 발로나 초콜릿과 블렌딩한 부아 켈루악 아이스크림 한 스쿱을 얹은 뒤 따뜻한 밀크 초콜릿 에스푸마로 마무리한 것.

이번 포핸드 다이닝 메뉴의 콘셉트에 대한 설명을 말콤 리에게 부탁했다. “제가 이번 디너를 위해 준비한 요리들은 정식당과 잘 어울리는 요리들이에요. 동시에 페라나칸 음식의 진수를 보여주죠. 새콤하면서도 매콤한 페라나칸 요리의 특징을 잘 보여주기 위해 라임과 식초가 들어간 요리를 선보일 예정이에요. 한국 분들이 싱가포르에 왔을 때 기대할 수 있는 맛의 예고편이라고 보면 될 것 같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