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스타 ‘코지마’ 박경재 셰프 “나 자신에게 부끄럽기 싫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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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정하고 꾸미지 않은, 오로지 한 점 한 점 내 앞에 놓이는 음식에만 집중하게 만드는 빈 캔버스 같은 공간. 일본에서 직접 공수한 500년 된 편백나무로 제작한 히노키 바 뒤에서 조용한 미소를 머금은 채 스시를 쥐는 박경재 셰프의 차분한 카리스마. 코지마는 박경재 셰프를 닮았다.

그의 고향은 전라남도 신안 우이도의 작은 바닷가 마을이다. 대부분이 떠나 지금은 몇 가구 남지 않은 성촌마을이지만, 당시에는 36가구가 모여 살던 박 씨 집성촌이었다. 1989 2월, 그는 고등학교를 졸업하자마자 상경했다. 요리가 목적은 아니었다. 단지 가장 친한 고향 친구가 반포의 한 일식집에서 일하고 있었고, 레스토랑의 총괄 주방장도 같은 고향 출신이었기 때문에 도전해 본 일이었다.

박 셰프의 아버지는 오랫동안 고깃배를 했다. 덕분에 어렸을 때부터 온갖 생선과 해산물을 먹으며 자랐다. 4학년 때는 목포로 전학을 갔다. “어머니와 장을 보러 시장에 가면 다양한 식재료를 볼 수 있었는데, 그게 그렇게 재미있었어요.”

그가 추억하는 섬마을의 밥상은 소박했다. 여름에는 감자, 겨울에는 고구마를 점심으로 먹었고, 아버지가 들고 오는 해산물로 풍요로운 식탁이 완성됐다. 여수분인 어머니는 음식 솜씨가 좋았다. “직접 재배한 감자와 양파로 어머니가 된장찌개를 끓여주셨는데 그게 지금도 생각나요.”

어렸을 때 먹었던 생선 중에서 가장 맛있었던 것은 붉바리. 연중 잡히는 고급 어종으로 바리과 어류 중 제주와 남해안에서는 흔한 바닷물고기다. “시골에서는 가공할 방법이 없으니 생선을 주로 말리거나 젓갈을 만들어 먹었어요.” 콕 집어 요리에 관심이 있었던 것은 아니지만, 그가 스시 셰프의 길을 선택했던 건 어찌 보면 너무나 자연스러운 일이었다.

“일본인보다 더 일본인 같다.” 신라호텔 아리아케의 스시 장인 모리타 마쓰미 셰프가 제자 박경재에 대해 한 말이다. 오로지 깊이 있는 정통 스시를 만드는 데에만 쏟아온 그의 30년 스시 열정에 대해 한 얘기일 수도 있겠다. 어쩌면 그의 지독한 양심을 두고 한 말일 수도.

11월 8일 발간된 미쉐린 가이드 서울 2018에서 2스타로 승급한 코지마의 박경재 셰프를 만나 소감을 들어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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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쉐린 2스타 수상 축하합니다. 발표 당시 어떤 심정이었나요?

오너분에게 덜 미안하게 됐다는 생각을 가장 먼저 했어요.  저도 저이지만 그분 역시 레스토랑을 하나의  문화 사업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매달 적자임에도 불구하고 충분한 지원을 해주세요. 한편으로는 코지마가 미쉐린 가이드 서울에서는 유일하게 스타를 받은 스시 전문점이라 불안한 마음도 들어요. 서울 스시의 수준이 꽤 높다고 생각하는데 전반적으로 기대에 못 미치는 평가를 받아서 앞으로 더 좋은 평가를 받는 날이 왔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어요. 무엇보다도 책임감이 더 커졌습니다. 진짜 열심히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어요 (웃음).

음식을 준비할 가장 집중하는 부분은 무엇인가요?

모든 셰프가 다 같겠지만 재료 본연의 맛을 최대한 살리려고 노력합니다. 생선이면 생선, 조개류면 조개류, 그리고 채소면 채소. 이 재료가 갖고 있는 본연의 맛은 무엇인가? 같은 종류의 재료 중에서도 특히나 좋은 맛을 낼 수 있는 재료는 어느 것인가? 30년을 해왔지만 공부가 끝났다고 할 수 없어요. 조리사로 살아가는 동안에는 끊임없이 고민해야 할 부분이겠죠.

재료 본연의 맛으로 승부를 거는 음식이 스시이기 때문에 스시가 훌륭하려면 재료 자체부터 남달라야 하겠죠.

좋은 재료는 물론이고 그 재료의 맛이 정점에 도달했을 때 손님에게 내는 것 역시 중요해요. 흰살 생선이나 오징어의 경우 재료 자체의 맛에 높은 비중을 두는 반면 전어나 고등어 같은 등푸른생선의 경우는 신선도뿐만 아니라 재료의 손질이 높은 비중을 차지해요. 어떻게 손질해서 어떻게 소금 식초에 절이고 얼마나 오랜 시간 동안 숙성시키느냐 등이 관건이죠.

재료는 어떻게 공수하시나요?

하루도 안 빼고 매일 가락시장에 갑니다. 보통 5시 반에서 6시 사이에 일어나는데 시장에 도착하면 6시 반 정도 돼요. 산지에서도 재료를 받고요.

시장에서 좋은 재료를 발견했을 때의 기분은 어떠세요?

저걸 맛있게 준비해서 손님들에게 내야겠다는 생각에 행복해져요. 그 맛에 시장에 가요.

셰프님께서 개인적으로 좋아하는 재료는 무엇인가요?

특별히 가리지는 않는데 흰살 생선을 좋아해요. 한국은 광어, 넙치, 도다리, 도미 등의 흰살 생선이 좋은 편이에요. 갑오징어, 무늬오징어, 한치 같은 오징어도 좋아하고 어패류를 좋아해요. 한국은 어패류가 좋아요.

셰프님 나름대로의 재료 선별 기준이 있겠죠?

각 재료마다 제가 선호하는 사이즈가 있어요. 참치는 대략 150kg, 도미는 1.5kg에서 2kg 정도, 방어는 10kg 전후의 크기를 좋아합니다. 피조개는 135g에서 150g이 좋아요. 색깔도 예쁘고, 스시 모양도 예뻐요.

해산물의 맛이 가장 좋은 사이즈는 스시 셰프라면 알고 있어야 할 일률적인 잣대인가요? 아니면 셰프님의 노하우인가요?

상식일 수도 있고 개성이자 기호일 수도 있어요. 어떤 셰프들은 큰 사이즈를 선호하는 반면 좀 더 작은 사이즈를 좋아하는 셰프도 있어요. 제각각이라고 보는 게 맞을 거예요.

지금 시기에 좋은 해산물은 뭐가 있을까요?

방어랑 조개류가 좋아요. 왕우럭조개와 (조금 이른 감이 있지만) 피조개가 제철이에요. 전갱이, 학꽁치, 고등어, 꽁치 등의 등푸른생선도 좋고요.

고객의 취향도 셰프의 개성도 제각각이에요. 결국 셰프와 코드가 맞는 사람이 단골 고객이 되는 거겠죠?

모든 음식이 그렇지만 스시는 특히나 고객과 셰프와의 교감이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고객과 셰프도 인간이다 보니 잘 맞는 사람이 있는 반면 왠지 불편하고 잘 맞지 않는 사람도 있어요. 레스토랑 분위기도 중요한데, 한 공간이 주는 느낌은 셰프가 일하는 스타일에 좌우된다고 생각해요. 코지마는 고객분들이 스시에 집중할 수 있는 차분하고 조용한 공간이에요.

셰프님이 생각하는 스시의 매력은?

단순함. 양념을 하거나 가공하지 않은 스시의 순수함이 좋아요. 그래서 어렵기도 하죠. 공장에서 물고기를 찍어내지 않잖아요. 그렇기 때문에 재료의 크기와 육질, 그리고 맛이 매일 조금씩 달라질 수밖에 없어요. 재료와 만드는 사람뿐만 아니라 먹는 이가 누구냐에 따라 스시의 맛이 달리지기도 해요. 매일매일 똑같은 일을 반복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매일매일 다른 일을 하고 있는 거죠. 제가 낯을 많이 가리는 성격이라 어려운 부분이기도 하지만, 고객을 마주 보며 음식을 만드는 것도 스시의 매력인 것 같아요.

30동안 같은 일을 해오면서 스스로를 어떻게 채찍질하는궁금합니다.

부끄러움이오. 가끔씩 제가 만드는 스시가 마음에 안 들 때가 있어요. 한결같이 하려고 노력하지만, 마음대로 잘 안 될 때가 있어요. 컨디션의 문제일 수도 있는데, 가끔 스시가 너무 가볍게 쥐어질 때가 있어요. 그럴 때에는 견딜 수 없을 정도로 부끄러워요. 제 자신에 대해 깊이 반성하는 계기가 되죠. 셰프로서 가장 괴로운 일이에요. 30년이 지났지만 ‘이젠 됐다’라고 생각해본 적이 한 번도 없어요. 늘 새로운 마음가짐으로 하고 있어요. 떨림도 있고 긴장감도 있고 부담감도 있어요.

지금까지 경험했던 스시 가장 인상 깊었던 곳은 어디였나요?

2004년 아리아케가 일본 긴자의 기요다 스시와 제휴를 맺었어요. 당시 기요다에서 3개월 연수를 받았었는데, 최고의 재료를 쓰는 곳이기 때문에 스시 자체도 물론 맛있었지만, 그곳의 분위기와 기무라 상의 철학 등이 제가 가야 할 스시의 길을 제시해주었어요. 저에게는 소중한 배움의 시간이었고, 그 당시의 경험이 지금 제가 하는 스시에도 많이 녹아있어요.

방금 셰프님께서 언급하신 ‘스시의 길’이란?

‘스시의 길’에는 모든 게 함축되어 있어요. 내가 스시를 어느 정도 배워 독립을 해서 돈을 벌건지, 내가 이 길을 가면서 제대로 깊이 있게 파고들 것인지. 스시가 나에게 어떤 의미를 갖는지 생각하고 고민해봐야 해요. 저는 독립해서 돈을 벌어야겠다는 생각은 단 한 번도 해본 적이 없어요. ‘깊이 있고 제대로 된 스시를 한 번 해보자’라는 생각으로 지금까지 왔어요. 셰프라면 언젠가는 선택의 기로에 서게 되는 시점이 와요. 저는 저의 길을 택했어요. 모두의 길이 같을 수는 없고요.

현재 상황에 만족하시나요?

100% 만족할 수는 없어요. 한국에서 스시를 하다 보면 제약이 많은 게 사실입니다. 특히 재료에 대한 제약이 아쉬울 때가 많아요. ‘내가 만약 일본에서 태어나서 일본에서 스시를 했었더라면 어땠을까?’라는 생각도 해봤어요. 일본 셰프와 한국 셰프가 100미터 달리기를 하면 일본 셰프는 70미터 앞에서 출발하는 거나 다름없어요. 도쿄의 츠키지 수산시장에 가면 스시 셰프에게 필요한 모든 재료가 다 있어요. 아침에 시장 가서 사 오면 돼요. 반면 한국에는 스시 재료가 많지는 않아요. 그래서 산지도 열심히 알아봐야 하고 신경 쓸 부분들이 많아요. 물론 스시가 일본 음식이기는 하지만 일본에서 스시하는 셰프들은 복받은 사람들이에요. 셰프로서 부럽죠. 한국 셰프들이 노력은 굉장히 많이 하는데 노력으로는 극복할 수 없는 문제들도 분명히 있습니다.

그런 어려운 부분들이 점차 해결될까요?

쉽게 해결될 문제는 아니에요. 조리사 개개인의 노력도 필요하지만, 국가나 사회 차원에서 해결해야 할 부분들도 있어요. 무엇보다도 셰프들이 좋은 재료를 마음껏 쓸 수 있는 여건이 마련되었으면 좋겠어요. 식재료에 대한 제약이 존재하는 이상 요리의 발전은 한정적일 수밖에 없거든요. 생산자, 유통업자, 조리사, 그리고 소비자, 이 모든 단계가 제대로 갖춰져야 외식산업이 발전할 수 있어요. 국내 셰프들끼리 경쟁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외국 조리사들이 ‘한국에 가면 원하는 모든 재료로 요리할 수 있다. 한국에 가서 한 번 일해보고 싶다’라는 생각이 들 만큼의 여건이 갖춰져야 해요. 그래야 제대로 성장할 수 있어요. 서로 경쟁하면서 함께 발전하는 거죠.

후배 셰프들에게 해주고 싶은 조언이 있나요?

저는 간단명료합니다. 요리하는 것 자체가 행복하지 않으면 그만두는 게 나아요. 시간도 많이 투자해야 하고 업장에 매여있어야 해요. 그렇기 때문에 요리 자체가 좋지 않으면 오래 버틸 수 없어요. 요즘 인기를 끌고 있는 요리 프로그램들 덕분에 조리사에 대한 인식이 긍정적으로 바뀐 부분도 있지만, 그 결과 겉으로 보이는 화려함만 추구하는 학생들도 많이 봤어요. 현장에 나가 보면 주방 일이 결코 화려하지 않잖아요. 굉장히 힘들어요. 그걸 못 견뎌 하더라고요.

셰프나 레스토랑이 자신의 본분을 잊으면 안 돼요. 초심을 잃으면 안 돼요. 손님이 찾아주시는 것에 대해 감사해야 합니다. 고객에 대한 배려가 없으면 오래갈 수 없어요.

셰프로서 지양해야 부분은 무엇이라고 생각하세요?

욕심. 성급함. 빨리 익히고 빨리 성공하고 싶다고 그게 내 맘대로 되는 게 결코 아니에요. 시간이 필요한 직업이에요. 저는 요리야말로 가장 양심적인 사람이 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청결한 환경에서 좋은 식재료로 건강에 좋은 음식을 만들어야 하거든요. 실력이 갖춰지지 않아서 최상의 재료를 최상의 상태로 손님에게 내지 못하는 것도 양심 없는 행동이라고 생각해요.

그렇다면 반대로 셰프님께서 스승에게 들은 기억에 남는 조언이 있나요?

아리아케에서 근무할 당시 신라호텔 이벤트를 통해 ‘미카와 제잔쿄’ (도쿄의 1 미쉐린 스타 덴푸라 전문점)의 오너 셰프인 사오토메 상을 만나게 됐어요. 그분은 ‘스키야바시 지로’의 스시 장인 오노 지로 상과 함께 에도마에 스시에 대한 연구를 하고 있어요. 에도마에 스시의 본뜻은 도쿄 인근 해역에서 잡힌 재료만을 이용하여 만든 스시인데, 지금은 진정한 의미에서의 에도마에 스시를 찾아보기 힘든 현실이에요. 대부분의 스시 재료들이 다른 산지에서 오거든요. 전어의 경우 도쿄만에서 잡힌 걸 최고로 치지만, 성게알(정확히는 성게의 생식선)은 북해도산을, 참치는 오마산을 최고로 쳐요. 사오토메 상이 제 스승은 아니지만, 그분이 하신 말씀 중에 기억에 남는 건, 정말 좋은 재료를 이용하여 정성을 다해 만들면 그 음식이 바로 에도마에가 된다는 얘기였어요. 깊이 공감했고 지금도 종종 생각나는 얘기입니다.

많은 스시 셰프들이 박경재 셰프님의 스시를 두고 ‘장인의 스시’라고 표현하는데 본인 스스로를 장인이라고 생각해본 적이 있으신지요?

아니오. 그런 얘기를 들으면 부끄럽습니다.

장인이 되기 위해서는 어떠한 훈련이 필요할까요?

매일매일 자신이 하는 일에 최선을 다하면 그게 다져지고 쌓여서 어느 정도 수준에 도달하지 않을까요? 그러다 보면 장인이라고 불릴 수도 있겠죠.

개인적으로 어떤 음식을 즐겨드세요?

저는 중학생 초등학생 딸만 둘이에요. 아이들이 고기를 좋아해서 외식할 때는 아이들 기호에 주로 맞추는 편이죠. 저는 양식을 좋아하는데 컨템포러리 양식보다는 클래식 프렌치나 이탤리언을 즐겨 먹어요. 오프레(Aupres)와 레스쁘아 뒤 이부(L’Espoir du Hibou)에 자주 가요. 피자와 햄버거도 좋아해서 자주 먹고요.

코지마에서는 음식 사진을 찍는 금지되어 있어요. “No photo”고집하는 특별한 이유가 있는지요?

사진을 보면 레스토랑의 모든 것이 다 드러나요. 레스토랑을 방문했는데 사진에서 봤던 똑같은 요리가 나오면 고객 입장에서도 재미없잖아요. 혹은 ‘저 집 조리사가 하는 요리를 나도 한 번 해볼까?’라고 생각하는 셰프들이 많아지면 집집마다 천편일률적인 음식만 제공하게 되겠죠. 개성이 없어져요. 그런 차원에서 고객분들께 사진 찍는 걸 자제해달라고 부탁드려요. 제가 하는 걸 다 보여주고 싶지 않아요. 그래서 처음부터 사진 금지에 대한 부분은 확고하게 지켜왔어요. 손님들께서 조리사의 심정을 조금만 이해해 주셨으면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