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치찌개, 발효의 황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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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효는 인간과 자연의 합작품이다. 빨래를 너는 것은 사람이지만 말리는 것은 바람이듯이 김치를 담는 것은 사람이지만 김치를 발효시키는 것은 시간이다. 시간을 산다는 것은 태어나고 성장하고 늙고 죽는 것을 의미한다. 김치는 이런 과정을 하나하나 밟아갈 때 맛과 영양이 최고조를 이룬다. 김치찌개를 이야기 함에 앞서 김치를 말하는 것은 가장 맛있는 찌개를 끓일 수 있는 비결이 김치를 담는 시점에서 이루어 지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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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사람이 가장 사랑하는 음식 중 대표적인 것이 김치찌개이다. 직장인의 점심 중 가장 많이 먹는 메뉴로 김밥과 더불어 김치찌개가 꼽혔으며 매일 먹을 수 있는 음식으로 김치찌개를 선택했다. 김치찌개는 전문 식당도 있지만 집집마다 끓여 먹기도 하고 일류 셰프도 골몰하며 그 레시피를 연구하지만 캠핑간 학생들도 별 노력 없이 만들어 먹는다. 조화를 이루는 부재료도 다양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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돼지고기를 넣는 것이 대표적이며 소고기를 넣어 고급감을 내기도 한다. 멸치나 고등어, 꽁치를 넣어 생선의 고소함을 증폭시키는가 하면 참치나 연어 통조림으로 쉽게 만들어 먹을 수도 있다. 단순하게 두부만 넣어 고소하게 먹을 수도 있다. 다양하게 조리되는 김치찌개 가운데서 백미를 꼽으라면 많은 이들이 묵은지 돼지 김치찌개를 이야기 한다.

묵은지

묵은지란 김장김치가 해를 넘기거나 2-3년이 넘도록 숙성시켰을 때를 의미한다. 김치의 발효는 담는 시기부터 시작된다. 미생물의 생장에 따라 발효의 초기, 중기, 말기로 나누어 볼 수 있다. 초기에는 유산균 발효가 진행되고 중기에는 초산균 발효가 이루어 지면서 산미가 급증한다. 이때 효모의 활동도 왕성해진다. 그 경계를 넘어서면 발효는 말기로 이어지는데 이 때는 유산균과 초산균이 대부분 사멸하며 배추의 조직감이 물러진다.

이 단계에서 발효에 의한 유산균은 거의 사멸하고 없어진다. 그렇다고 해서 영양 가치가 떨어지는 것은 결코 아니다. 초기, 중기의 발효 과정에서 미생물이 성장하고 증식하며 발생한 생리 활성 물질들이 차곡차곡 쌓여있다. 배추의 무기질, 식이섬유, 젓갈의 단백질은 체내에 흡수되기 가장 좋은 미세 단위로 분해되어 있다. 말기의 김치에서 보이는 영양의 균형은 하나의 아름다운 생태계를 이룬다. 영양학자와 의학자들은 김치를 연구하면서 항산화 성분과 항암 효과에 대해서 밝혀내었다. 발효 과정에서 김치에 누적된 생리 화학 물질군은 인체 혈액의 콜레스테롤을 분해하고 체세포의 돌연변이를 방지하는 원리로 암세포의 증식 및 성장과 전이를 막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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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양뿐만 아니라 맛에서도 차원이 다른 경지를 이룬다. 단품의 음식으로서 맛이 지닌 복합성은 단연코 독보적이다. 단맛, 신맛, 쓴맛, 짠맛, 매운맛 등 직관적 오미(五味)는 물론 젓갈에서 유래하는 감칠맛까지 뛰어나다. 발효하고 숙성되는 과정에서 훈연했을 때와 유사한 풍미가 더해진다. 이들의 맛성분이 각개로 발산하는 것이 아니라 한 점 김치에 어우러지기에 조화로움이 느껴진다. 묵은지의 맛은 단순히 미각 신경을 자극하는 것이 아니다. 시간차에 따라 쌓여간 풍미가 동시다발로 습격하며, 오늘 먹은 맛과 내일 먹을 맛이 다르기에 언제 먹어도 새롭고 다시 먹어도 실증 나지 않는다. 이러한 맛의 복합성을 이해하고 활용하면 별다른 조미료 없이도 천상의 묵은지 김치찌개를 끓일 수 있다.

돼지와의 궁합

묵은지는 돼지고기와 천생연분 부부 같다. 서로의 장점은 끌어올리고 단점은 완벽히 보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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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린내가 스치는 삶은 돈육은 김치의 산미가 깔끔하게 정돈한다. 살코기의 살강살강한 식감은 묵은지의 부드러움으로 감싸 안으며 전체적으로 실키하게 녹아 들어간다. 묵은지만 넣었으면 시큼했을 국물은 돼지고기가 특유의 달근한 구수함으로 글래머러스하게 채운다. 특히 제대로 발효된 김치는 동물성 지방이 초래하는 산화작용을 방지한다. 돼지를 삼겹살로 먹었을 때 높아졌을 혈중 콜레스테롤을 찌개의 김치가 말끔히 녹여내어 피가 끈적거리는 것을 막는다.

김치찌개의 꿀 조합

살짝 구운 재래김에 뜨거운 밥을 한 술 떠 푹 익은 김치 한 조각을 올린다. 거기에 계란 말이를 잘게 쪼개어 김밥처럼 돌돌 말아 먹으면 아주 맛있다. 잘 익은 김치 잎사귀 부분으로 지방과 살이 함께 붙은 돼지 목살을 감싸 먹으면 입에서 살살 녹는다. 김치찌개를 먹은 후 남은 국물에 라면사리를 넣어 끓여먹는 것은 많은 사람들에게 사랑 받는다. 조금 더 정성스런 식당에서는 수제비를 띄워 서비스를 해주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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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명한 김치찌개 전문점에는 계란말이를 전담하는 조리사가 있어 정성을 쏟는다.

보글보글보글, 김치찌개 끓는 소리를 들으면 가슴에서는 안정감이 깃들며 집 생각이 마구 피어난다. 특히 한국 사람들이 외국에 갔을 때 가장 떠오르는 것은 뚝배기에 끓는 김치찌개의 소리와 맛이다. 몸과 마음이 피곤하고 불안하더라도 푹 익은 김치찌개를 먹으면 마음이 열리면서 편안해 짐을 느낀다. 김치찌개는 한국인의 밥상에 뿌리와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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뜨거운 밥 김치찌개와 계란을 쌈으로 먹으면 맛있다.

오늘 당장 김치찌개를 먹고 싶다 하여 겉절이나 이제 막 담은 김치로는 맛있는 김치찌개를 끓일 수 없다. 하루라는 시간을 넘어 한달, 계절, 해를 지내고 나서야 찌개를 끓일 수 있는 김치로 거듭난다. 끓일 때도 센 불로 바글바글 끓여서는 깊은 맛을 낼 수 없다. 온화한 불로 뭉근하고 자글자글 참을성 있게 익혀낼 때 김치는 김치대로 부드럽고 국물은 국물대로 개운해진다. 김치찌개를 끓이면 발효에서 얻은 유익균은 대부분 사멸하지만 무기질과 유기산, 미세하게 분해된 영양 성분이 한 덩어리의 완전체를 이룬다.

김치를 사람이라고 치면 김치찌개는 김치의 황혼기이다. 청년시절만큼 에너지가 왕성할 수는 없으나 황혼기에 이른 삶은 과정 과정에서 쌓아온 지혜와 덕성이 완숙한 조화를 이룬다. 발효의 제왕 김치의 황혼기. 김치의 생애는 묵은지 김치찌개가 되었을 때 비로소 완성된다. 나이가 들면서 김치찌개가 더욱 맛있어 지는 이유는 자신에게도 찾아올 황혼의 맛을 본능적으로 예감하고 느끼기 때문이다.